뇌신경학

스트레스와 뇌가소성: 해마와 편도체를 중심으로

starryestella 2025. 7. 7. 22:51

스트레스는 인간의 생존과 적응을 위한 기본적 반응 메커니즘이다. 일시적이고 적절한 스트레스는 뇌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주는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지속되거나 강도 높은 상태로 반복될 경우, 뇌는 그 자극을 생물학적으로 받아들이며 구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변화는 단순한 일시적 반응을 넘어서 뇌의 회로 자체를 재구성하는 ‘뇌가소성(plasticity)’을 유발하게 된다. 뇌가소성은 환경 변화에 맞추어 신경 회로를 조절하거나 재설계하는 능력으로, 학습과 기억, 회복력 형성의 핵심 기전이다. 특히 감정 처리와 기억 기능을 담당하는 해마와 편도체는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 영역으로, 이 두 구조를 중심으로 스트레스가 뇌가소성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신경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람의 옆모습에 뇌와 척추가 상세히 그려져 있는 이미지_뇌가소성의 작용 표현

스트레스가 해마의 구조와 기능에 미치는 영향

해마는 기억 형성, 학습, 공간 인식 등을 담당하는 핵심적인 뇌 구조다. 스트레스가 해마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보다 훨씬 실제적이며, 임상적으로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경우, 해마에서 새로운 뉴런의 생성이 억제되고, 기존 시냅스 간 연결도 약화된다. 이로 인해 장기기억 형성과 정보 통합 능력이 저하되며, 심한 경우 해마의 부피가 감소하는 구조적 변화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농도의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해마의 뉴런 수용체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면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험 준비에 따른 단기적 스트레스는 오히려 학습 집중도를 높이고 단기기억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험 실패나 만성적 불안 같은 장기 스트레스는 반대로 기억력 저하, 수면 장애, 의욕 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해마는 이처럼 스트레스에 양면적으로 반응하는 구조이며, 뇌가소성이라는 이름 아래 그 반응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해마의 가소성 변화는 스트레스의 ‘양’보다도 그 ‘지속 시간’과 회복 간격에 따라 결정된다.

편도체의 과활성화와 정서적 회로 변화

편도체는 외부 자극을 감정적으로 해석하고, 특히 공포와 위협에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의 중심축이다. 이 구조는 위협 탐지와 감정 반응의 신속한 유도에 필수적이며, 생존 본능과 직결된다. 그러나 반복된 스트레스 상황에서 편도체는 점점 더 민감해지고, 시냅스 연결이 과도하게 강화되며, 감정적 과잉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자극에도 과도한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는 ‘정서 과민반응’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PTSD 환자들의 뇌 영상 연구에서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반면, 전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이는 스트레스가 감정 회로를 재구성하며, 뇌가소성이 감정 처리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 시절 학대나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 편도체 과활성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며, 이는 정서적 반응을 조절하지 못하는 불안장애, 충동 조절 장애 등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가역적인 변화이며, 특정한 자극이나 개입을 통해 회복 가능한 뇌가소성의 예로 간주된다.

스트레스와 뇌가소성의 신경생물학적 연결 고리

스트레스는 신경호르몬, 시냅스 단백질, 유전자 발현 등 다양한 생물학적 요소에 영향을 미치며 뇌가소성을 매개한다. 특히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는 신경세포 생존과 시냅스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스트레스는 이 물질의 분비를 억제함으로써 가소성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동시에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는 해마와 편도체 모두에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어, 스트레스에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은 단순히 감정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엘린 재편성, 백질 경로 손상, 기능적 연결성 감소 같은 구조적 손상은 주의력, 문제 해결 능력, 사회적 상호작용 기능 전반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뇌는 변화에 반응할 뿐 아니라, 회복하려는 경향도 지니고 있다. 적절한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사회적 교류는 손상된 뇌 회로를 재활성화시키며, 이는 회복적 뇌가소성의 핵심이다.

회복 탄력성과 뇌가소성의 재설계 능력

뇌가소성은 단지 손상 이후의 복구 기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통해 변경된 뇌 회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설계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정상적인 뇌 기능을 회복하며, 때로는 이전보다 더 강한 기능적 회로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강화된 적응’으로도 불린다.

정기적인 명상, 인지행동치료(CBT), 감정 일기 쓰기, 예술 활동 등은 감정 회로를 점진적으로 안정화시키며, 해마와 편도체 간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신체 운동은 BDNF 분비를 촉진하여 뉴런 성장과 시냅스 형성을 가속화하고, 회복 중심의 뇌가소성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결국 뇌는 스트레스를 통해 고통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하고 새로운 회로를 조직하는 재설계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 이 회복 가능성은 교육, 훈련, 심리적 지원을 통해 더욱 강하게 유도될 수 있다.